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끊어야 할까 견뎌야 할까
분명 가까운 사이인데, 만나고 나면 늘 기분이 가라앉습니다. 딱히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대화를 하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워지는 사람. 끊자니 정이 걸리고, 계속 보자니 매번 똑같이 힘들고. 누구나 한 번쯌은 이런 관계 앞에서 고민해본 적 있을 겁니다.
오늘은 이 애매한 관계를 어떻게 판단하고,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심리학의 시각으로 풀어보겠습니다.
힘든 관계와 나쁜 관계는 다르다
먼저 구분이 필요합니다. 모든 갈등이 관계를 끊어야 하는 신호는 아닙니다.
심리학자 존 가트맨(John Gottman) 은 건강한 관계에서도 갈등은 자연스럽게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중요한 건 갈등 자체가 아니라, 갈등이 반복되는 패턴으로 자리 잡았는지입니다.
가끔 의견이 달라서 부딞히는 것과, 만날 때마다 비슷한 방식으로 상처받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후자라면 한 번쯈은 진지하게 들여다봐야 합니다.
끊어야 할 관계의 신호들
1. 만난 후 항상 같은 감정이 남는다
기분이 좋았다가도 나빠졌다가 하는 게 아니라, 만날 때마다 무기력함, 불안, 자기 의심이 반복적으로 남는다면 주의가 필요합니다.
2. 내 감정이 자주 무시당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정서적 무효화(Emotional Invalidation) 라고 부릅니다. 내가 느낀 감정을 "네가 너무 예민한 거야"라는 식으로 부정당하는 경험이 반복되면, 자존감에 누적된 손상이 생깁니다.
3. 관계의 균형이 한쪽으로 기울어 있다
항상 내가 맞춰주고, 항상 내가 먼저 연락하고, 항상 내가 이해해줘야 하는 구조라면 그건 관계가 아니라 일방적인 부담입니다.
4. 죄책감을 이용해 통제한다
"내가 너 때문에 이렇게 됐잖아"처럼 죄책감을 자극해서 행동을 바꾸게 만드는 방식은 심리학자들이 흔히 경고하는 가스라이팅의 한 형태입니다.
그래도 견뎌볼 수 있는 관계의 조건
모든 힘든 관계를 끊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다음 조건이 있다면 회복 가능성을 먼저 시도해볼 만합니다.
① 상대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일방적으로 나만 힘든 게 아니라, 상대도 관계의 문제를 알고 변화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대화로 풀어볼 여지가 있습니다.
② 좋았던 시기가 분명히 존재했다
지금은 힘들지만 분명 건강했던 시기가 있었고, 그 모습으로 돌아갈 단서가 보인다면 성급한 단절보다 회복을 시도해볼 수 있습니다.
③ 솔직한 대화를 시도해본 적이 없다
의외로 많은 관계가 직접적인 대화 없이 일방적인 판단으로 끝납니다. 한 번이라도 내 마음을 솔직하게 전한 적이 없다면, 끊기 전에 그 시도부터 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도 끊는 것이 맞는 경우
- 대화를 시도해도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 상대가 변화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
- 관계 때문에 일상 생활이나 다른 관계까지 무너진다
- 만날 생각만 해도 신체적으로 긴장되거나 거부감이 든다
심리학자 어빈 얄롬(Irvin Yalom) 은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책임은 결국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누군가를 끊어내는 결정이 차갑게 느껴질 수 있지만, 나를 갉아먹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더 큰 손실일 수 있습니다.
결정하기 전에 해볼 수 있는 질문
판단이 어려울 땐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세요.
- 이 사람과 있을 때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는가, 더 작아지는가
- 이 관계가 없었다면 지금 내 삶은 어떨까
- 나는 의무감 때문에 머무는가, 진심으로 원해서 머무는가
답이 명확해지지 않더라도,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관계를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관계를 끊는 것도, 견디는 것도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그 결정의 중심에는 항상 나 자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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